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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신선한, 하지만 생소한.

돋보기/시사

by 열정과 함께 2011. 11. 2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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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이면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국민의 일상에 다가가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대중이 후보에 가진 이미지가 후보의 당선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대 정치에서 정치인이 '나는 그대에게 가까운 사람이오' 라고 어필하는 것은 어쩌면 당선을 위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장에 가서 오뎅 국물을 먹거나, 군부대에 가서 장병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지역 주민들과 함께 청소를 한다거나.

글쎄. 박원순 서울 시장이 당선 초기 그런 모습을 처음 보였을 때는 그 나름의 '파격'이라고 생각했었다. 출신성분 답게 여태까지 다른 정치인들이 보여왔던 행동보다는 한 발짝 더 나아간, 하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그는 기존의 서울 시장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다. 관선 시장에서 직접 투표를 통해 뽑는 시장, 그리고 대한민국 주요 정당 출신이라는 과거의 사례에서 벗어난, 뚜렷한 정당색 없이 자기만의 정치색, 자기만의 이념은 있지만 색깔을 크게 입히지 않은 그런 후보로 나와서 인기몰이를 하여 당선된 것은 박원순이 처음이다. 좋게 얘기하자면 변화하는 정치 풍토의 아이콘이고, 나쁘게 얘기하자면 주류 정치세력들이 격돌하는 정치의 '장(場)' 안에 그를 뒷받침해줄 든든한 정치적 기반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누군가는 주권을 가진 국민의 지지만큼 든든한 정치적 기반만큼 든든한 것이 있느냐고 반문할 지 모른다. 하지만 대중의 인기는 아침 이슬 같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의 지지기반에게 자신을 어필하는 행동이 비단 정치인만의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바뀌면 대규모 인사 이동이 일어나는 것, 국회의원이 바뀌면 지역구를 돌면서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과 같이 너무나도 분명한 것들은 물론이요, 회사에서 고위직 임원이 교체되면 인사이동이 일어난다. 조금 의미를 넓게 잡자면, 대인 관계에서 누군가를 '챙긴다' 는 행위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사람 간의 관계가 성립하는 모든 종류의 모임, 혹은 기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박원순이 이러한 행보를 보이는 것은 그 자신이 가진 그만의 정치적 기반, 즉 광범위한 시민 사회를 향해 그가 바로 그 '시민' 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는 것, 또한 그는 여태까지 여당 출신의 '배경 좋고' '돈 많은' 정치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차별화하여 보여주기 위한 행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박원순이 언제부터 '정치' 를 시작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이것은 정치를 어떠한 측면에서 규정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그렇지만 서울시장 박원순이 현재 공무원이면서 정치인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가 정치인이니만큼, 그의 지지기반에 대해 그가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행동' 을 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차라리 'ㅎ' 당이나 'ㅁ' 당의 정치인들이 겉치레성으로 자기 모습만 보이는 것을 서슴없이 위선이라고 부를 지언정, 박원순이 보여주는 행동에 대해 박원순을 '위선자' 라고 부를 생각은 전혀 없다. 아니, '위선자' 라고 부르는 것이 불가능하다. 현재 그가 보여주는 활동을 보고 그를 위선자라고 부를 수 있을지 판명나는 때는 그가 어느 정도의 시정활동을 보여주고 난 뒤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것은 그는 이제까지 소위 '재야' 에서 활동하던 사람의 위치를 벗어나 대한민국 정계의 중심, 공무원 사회에서의 고위권에 속한 '서울시장' 이라는 점이다. 아름다운 가게를 운영하고 시민 운동을 주도하던 박원순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것, 그리고 그가 보여주어야 하는 모습과 서울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박원순, 새로운 정치 기반을 갖고 등장한 '세력' 의 첫 주자로서 박원순이 보여주어야 하는 모습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수많은 시민 중의 하나가 시민 운동의 지도자 박원순을 찾을 때 그를 향해 달려가는 박원순과, 수많은 시민 중의 하나가 서울시장 박원순이 갖는 의미는 크게 다르다.

물론 이것이 서울시장은 평범한 범인들의 위에 있는 사람, 혹은 감히 범접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시민 운동가 박원순의 모습을 보아왔던, 그리고 그 박원순이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을 지켜본, 또 당선 직후에 그가 보인 행보를 지켜본 시민들이 서울시장 박원순에게 요구하는 것, 기대하는 것은 전임 시장 오세훈ㅗ 에게 시민들이 요구했던 것은 천양지차에 가깝다. 하지만 그것은 역으로 제도권에 있던, 기존의 정치판에 있던 정치인들이 그에게서 기대하는 모습과 부합한다기 보다는 상충되는 면이 더 많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을 위선자라고 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이나 그렇다는 것이지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되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는 사람에게, 자신이 걸었던 기대가 크면 클 수록 철저하게 돌아서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박원순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 다만 내가 기대하는 것이 너무 거창한 것이라 박원순이 내 기대에 부응할 거란 생각도 별로 안 한다. 하지만 나와는 다른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시민의 광범위한 지지로 당선된 서울시장에게서 시민의 지지가 떠나가는 순간 불어닥치는 역풍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과연 박원순 시장이 남은 임기를 역경을 헤치고 언제 바뀔 지 모르는 바람의 방향까지 타면서 잘 수행할 수 있을 지?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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