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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이야기 - 인사 참사(1), 이완구 총리 편

돋보기/박근혜 정부

by 열정과 함께 2015. 2. 18.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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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정부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알아본 적은 없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유독 인사와 관련해서 바람 잘 날이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에서 인사 기용과 관련하여 큰 화제를 끌어모은 인물을 꼽으라면 김용준, 윤창중, 윤진숙, 안대희, 문창극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다만 이완구는 이 카테고리, 그러니까 박근혜 정부의 기록 카테고리를 써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게 해 준 사람이며, 또한 나머지 인사들에 대한 자료 조사가 되어있지 않기에 이완구에 대한 글을 먼저 쓴다.




이 글은 이완구 총리의 인사 청문회에 관한 내용만 있는 글입니다.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하여 이완구 총리가 사임하기까지의 경과는 아래의 글에 별도로 실려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이야기 - 인사 참사(2), 이완구 총리 편 - 에필로그


2015년 2월, 이완구 총리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2014년 4월에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당시 총리였던 정홍원은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였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에서는 두 명의 인사를 물망에 올렸는데, 한 명은 전직 법조인 안대희였고 다른 한 명은 문창극이었다. 문제는 안대희는 전관예우로 인해, 문창극은 친일사관으로 인해 연이어 낙마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박근혜는 정홍원 총리의 사표를 반려하고 총리직에 유임시키는 초유의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사의를 표명했던 사람이 유임되었으니 사태가 진정되고 후임 인사가 다시 시작됨은 당연지사, 이완구는 이 과정에서 총리 후보로 떠오른 사람이었다. 박근헤 정부 3년차가 막 시작되는 2015년에, 연말정산 파동, 증세 논란 등으로 인해 박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 29% 를 찍게 된다. 따라서 이 때의 총리 인사는 박근혜 정부에는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될 인사였다. 이 인사마저 실패할 경우 당 내에서 친박의 입지가 줄어들고, 대권을 노리는 유력 주자들이 활동을 본격화하면 국정 운영에 큰 난맥을 초래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어싿. 따라서 이완구를 총리로 지명하기 위해 여러 조치들을 취하게 되고, 이에 따라 많은 잡음이 발생하게 된다.


이완구에게 총리 후보로서 있었던 흠결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순서로 아래와 같은 사항들을 꼽겠다.


1. 언론 탄압 및 언론관 문제

2. 청문회에서의 말바꾸기

3. 과거사 의혹

4. 병역 기피

5. 부동산 투기 의혹

6. 우송대 특강 의혹


또한 인사청문회의 진행을 볼 때 새누리당은 이완구 후보에게 그 어떤 흠결이 있다 하여도 이완구를 총리에 앉히려고 작정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글에서는 우선 이완구 총리 후보에게 있었던 흠결에 대해 다루고, 이후에 새누리당 의원들이 보였던 모습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아래의 자료들은 내가 모은 뉴스 기사, 그리고 국회 사무처에서 발간한 총리후보 인사 청문회 속기록을 근거로 작성되었다.


이완구 총리후보 인사청문회 속기록 링크(구글 드라이브) - 국회 사무처 홈페이지에서도 구할 수 있다.


1. 언론 탄압 및 언론관 문제


이완구 총리 후보는 청문회를 앞두고 기자들과 함께 사적인 모임을 가진 일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기자들과 대담을 나누었는데 당시 자리에서 한 기자(한국일보)가 이를 녹취했다가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 민주연합에 이를 건네준 일이 있었다. 새정치 민주연합은 이를 다시 KBS 에 제보하였고, KBS 에서 이를 보도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아래는 새정치 민주연합에서 발표한 녹취록에서 문제가 된 내용이다.


기사 링크


기사 링크(국민일보)



녹취록 전문


◇총장 및 교수 관련 부분◇ 


나도 대변인하면서 지금까지 산전수전 다 겪고 살았지만 지금도 너희 선배들 나하고 진짜 형제처럼 산다. 언론인들, 내가 대학 총장도 만들어주고 나, 언론인…지금 이래 살아요. 40년 된 인연으로 이렇게 삽니다. 언론인 대 공직자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인간적으로 친하게 되니까…내 친구도 대학 만든 놈들 있으니까 교수도 만들어주고 총장도 만들어주고… (중략) 


◇김영란법 관련◇ 


 내가 이번에 김영란법, 이거요, 김영란법에 기자들이 초비상이거든? 안되겠어 통과시켜야지 진짜로. 이번에 내가 지금 막고 있잖아, 그치? 내가 막고 있는 거 알고 있잖아 그치? 욕 먹어가면서. 내 가만히 있으려고 해. 가만히 있고 하려고 해. 


 통과시켜서, 여러분들도 한 번 보지도 못한 친척들 때문에 검경에 붙잡혀가서 당신 말이야 시골에 있는 친척이 밥 먹었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합니까 항변을 해봐. 당해봐. 


 내가 이번에 통과 시켜버려야겠어. 왜냐면 야당이 지금 통과시키려고 하는 거거든? 나는 가만히 있으면 돼. 지금까지 내가 공개적으로 막아줬는데 이제 안 막아줘. 이것들 웃기는 놈들 아니여 이거…지들 아마 검경에 불려 다니면 막 소리지를 거야. 


 김영란법이 뭐냐, 이렇게 얻어 먹잖아요? 3만원이 넘잖아? 1년 해서 100만원 넘잖아? 가…이게 김영란법이야. 이런게 없어지는 거지. 김영란법 만들어지면, 요게 못 먹는거지…하자 이거야. 해 보자.


◇미공개 녹취 부분◇(국민일보)

 한국일보 승명호 회장 그 사람 형 은호가 (나와) 보통 관계가 아니다. 나는 그 양반이 한국일보 맡을 줄 몰랐다 내가 (충남)도지사 그만두고 일본에 가 있었어요. 7개월 동안. 일본에 가 있던 집이 승 회장 집이야. 세상이 다 이렇게 엮여 있다고. 모른다고, 어떻게 될지. 이게 무서운 얘기 하는 거야. 60 넘어가면 어디서 어떻게 엮일지 몰라요. 


 그러니까 인생사라는 게 서로들 얽혀 있어서 함부로 하면 안 돼. 대한민국 사회는 특히. 그래서 내가 언론인들 많이 챙깁니다. 김○○이도 지금 ○○○○ ○○ 하고 있지? 그러니까 여기까지 40년 지탱하고 살아온 거지. 우리나라 정치판이 얼마나 어려운데. 


 침착하게 남을 도와주는 마음으로 가면 언젠가는 그게 리턴이 돼요. 막 그렇게 해버리면 너도 데스크로 가는 거지. 너도 너 살려고 할 거 아니야. 빼 하면 뺄 수밖에 더 있어? 그렇지 않소, 세상사가. 그럼 이상하게 돼 버리는 거야. 그래서 나는 젊은 기자분들 내 자식 같잖아. 큰 자식이 37입니다. 우리 60 평생 살았으니 얼마나 흠이 많겠소. 우리나라 압축성장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흠이 많겠고. 똑같은 거지. 우리 사는 게. 흠이 있더라도 덮어주시고, 오늘 김치찌개를 계기로 좀 도와주소. 섭섭한거 없지? 결론적으로 한겨레 기사는 클리어 된 거야. 동의합니까? 



이 이슈가 대형화된 배경은 다음 정도가 있다.


1) 이완구 총리후보는 언론인들을 대학 총장, 교수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이는 언론에 대한 각종 물질적인 회유가 얼마든지 오갈 수 있으며, 또 오갔던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2) 녹취록을 보면 이와 같은 부분이 나온다. '한겨레 기사는 클리어 된 겁니다.' 이는 한 언론의 보도 의지를 특정 개인의 이해관계를 위해 편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3) 이완구 당시 총리후보는 김영란법을 자기가 막고 있다고 헀다. 당시 김영란법은 사회 각계각층에 대해 금품 수수를 제재하기 위한 강력한 조항들을 담고 있었는데, 규정이 모호하다, 범위가 지나치다 등의 이유로 인해 공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각종 조항들을 수정해 가며 법을 손질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완구 총리 후보는 자신이 이 법을 막고 있음을 인증했던 것이다. 그것도 타당하지 않은 이유를 들어서. 다음은 인사청문회 속기록에서 발췌한 것이다.




2. 청문회에서의 말바꾸기


이완구 총리후보의 인사청문회에서는 난장판이 여러 번 연출된다. 녹취록, 그러니까 총리 후보와 기자들이 이야기한 그 자리에서의 녹취록을 틀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격론이 계속해서 벌어지기 때문이다(어떤 격론이 벌어졌는지는 추후 청문회에서 새누리당의 태도 항목에서 다시 논한다). 그리고 이 와중에 이완구 총리 후보는 청문회에서 자신이 했다는 말에 대해 지속적으로 태도의 변화를 보인다.


속기록 문서 27페이지

유성엽 위원 : 

(중략) 아까 존경하는 김경협 위원님께서 '언론인을 대학 총장으로 만들어 준 적이 있느냐' 그러시니까 '없다 ' 라고 답변을 하셨지요?

국무총리 후보자 이완구 : 그렇습니다.

유성엽 위원 : 그런데 그 문제의 녹취록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언론인들 내가 대학 총장도 만들어 주고 또 내 친구도 대학 만든 놈들 있으니까 교수도 만들어 주고 총장도 만들어 주고……’ 이렇게 말씀하신 기억 있습니까?

◯국무총리후보자 이완구 : 없습니다.

◯유성엽 위원 : 그런데 그 녹취록에 그렇게 분명히 들어 있어요.

◯국무총리후보자 이완구 : 저는 그런 사실은, 제가 기자분들과 그런 얘기를 했을 리가 있겠습니까?

유성엽 위원 : 아니, 녹취록에 있는데 이따 틀어 드릴까요, 이 문제를?

◯국무총리후보자 이완구 : 이따 제가 개인적으로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유성엽 위원 : 분명히 있습니다, 그 녹취록에. 그래서 이런 기억이 없다라고 하니까 그렇지만…… 그러면 대학 교수라든지 총장은 아니라도 그 언저리에 가는 분들의 자리를 만들어 준 기억이 있습니까, 기자들을?

◯국무총리후보자 이완구 : 저는 전연 그런 적 없습니다.


속기록 문서 33페이지

◯국무총리후보자 이완구 : (전략)....제가 한 시간 반 동안에 대단히 혼미한 상태에서 됐기 때문에 또 현재 제 마음가짐이, 기억 상태가 조금은 정상적이지를 못합니다. 삼일째 수면을 취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착오나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고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이 총장 문제뿐만 아니고 다른 어떤 것도 저의 실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을 합니다. 죄송합니다.


(중략)


◯金承南 委員 : ‘총장을 만들 수도 있다’라는 부분에 대해서 그런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 속기록에 정말 한자로 되어 있음)

◯국무총리후보자 이완구 : 한 시간 반 동안에 위원님 제가 어떤 얘기를 했는지 솔직히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속기록 문서 58 페이지

◯진성준 위원 : 이제 그런 발언을 하신 기억이 있습니까?

◯국무총리후보자 이완구 : 예,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진성준 위원 : 그런 발언을 하신 사실이 있지요?

◯국무총리후보자 이완구 : 예.

◯진성준 위원 : 그런데 ‘언론인들, 당신들 선배들하고 내가 지금 형제처럼 산다. 내가 대학총장도 만들어 주고 내가 이렇게 산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내 친구 중에 대학 만든 사람들도 있으니까 교수도 만들어 주고 총장도 만들어 줬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것 사실입니까?

◯국무총리후보자 이완구 : 위원님, 제가 평소에 가까운 젊은 기자들 앞에서 그런 얘기를 진심으로 했겠습니까?


이완구 총리 후보는 위증을 했다. 그것도 청문회 장에서. 이완구 당시 총리 후보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국민에게는 불행스럽게도 청문회에서 위증을 했을 경우에는 처벌을 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만약 저 장소가 청문회장이 아니라 법정이었다면 이완구 총리 후보는 위증죄로 처벌되었을 것이다.


3. 과거사 의혹


기사 링크


이완구 총리후보에 대한 또다른 의혹은 이완구 후보가 국보위에서 삼청 교육대의 업무 등에 관여되었을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위 기사에 따르면 새정치 민주연합에서 제기한 의혹은 다음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1) 새정치 민주연합의 의혹 제기 내역

 (1) 이완구 총리후보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내무분과에서 행정요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2) 내무분과에서는 당시 불량배 현황 파악이나 리스트 작성, 사전 검거 계획 수립과 일선에서의 진행 협조 등을  담당했다.

 (3) 이완구 총리 후보는 여기서 근무한 공적으로 보국훈장광복장까지 받은 적이 있다.


이 의혹에 대해 청문회에서 오간 이야기는 다음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2) 청문회에서 오간 내역 정리

 (1) 내무분과에서는 경찰에 유능한 인재가 하나 필요하니 한 명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였고, 유흥수 당시 치안  본부장이 이완구 경정을 보내 주었다(박원탁 당시 내무분과위원의 증언)

 (2) 이완구 총리 후보는 당시에 치안본부 기획감사과에서 2년째 근무중이었다.

 (3) 이완구 경정은 파견되어 내무분과위원장의 보좌역 역할을 했다(최환 당시 내무분과위원 증언. 이완구 총리  후보는 부인함)

 (4) 이완구 총리 후보는 반박하기를, 자신은 내무 분과에서 유일한 행정 요원이기는 했으나 그 어떤 회의에도  배석하지 못했으며, 그 어떤 회의 내용도 전달받지 못했고, 그저 문서수발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


그러나 이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남긴다.

- 이완구 총리 후보가 국보위로 파견된 것은 1980년이고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사무관 업무를 시작한 것은 1974년이다. 즉, 국보위 파견 당시 6년차의 사무관이었다. 총리 후보 본인은 경찰 업무를 맡은 것은 그 때가 2년차라서 중요 업무를 맡을 수 없었다고는 하나, 총 6년차의 경력이 쌓인 사무관에게 정말로 단순히 문서 수발만 하는 업무를 주었다는 말인가?

- 만약 문서 수발만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단순 문서 수발을 한 사람이 대체 무슨 공적이 있어서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았다는 말인가?


여기까지만 보면 이는 충분히 더 해명이 필요한 사안처럼 보이지만 황당하기 짝이 없게도, 이에 대한 청문회의 발언 기회는 아래와 같이 끝이 난다.


속기록 문서 87 페이지

◯위원장 한선교(새누리) : (전략)... 자, 그만하세요. 후보자도 이제 발언 그만하십시오. (이미 질의를 한 진성준 의원의 발언 시간이 초과된 상태였음)

◯진성준 위원(새정치) : 그 자료를 한번 주세요.

◯위원장 한선교(새누리) : 이 질의 답변은 내일 또 계속하시지요. 고맙습니다.

◯진성준 위원(새정치) : 위원장님, 질의시간이 너무 짧지 않습니까?

◯위원장 한선교(새누리) : 다음에 새누리당의……

◯김도읍 위원(새누리) : 다 똑같아요.

◯위원장 한선교(새누리) : 가만히 계세요.

◯진성준 위원(새정치) : 그러니까 5분이 아니고 애초 계획대로 10분 하셔야 된다 이런 말씀이에요.

◯염동열 위원(새누리) : 혼자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도 해야지?

◯진성준 위원(새정치) : 10분으로 하자고요, 10분으로.


**이름 뒤에 글쓴이 임의로 정당 명을 써넣음


4. 병역 기피


이완구 총리 후보의 병역 수행은 육군 일병으로 되어 있다. 입영했다가 질병을 이유로 전역조치된 것인데, 이를 얻게 되는 과정과 그를 해명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일단 이완구 총리 후보가 보충역 판정을 받게 되는 계기는 아래 기사에 잘 나와 있다.



 : 1급 현역 판정→행정고시 합격→휴직 없이 입영 뒤 재신체검사 판정→재검에서 2급 현역 판정→이의제기→4급 보충역 판정


모양새만 보면 계속해서 재검 요청을 해서 결국에 4급 보충역을 따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다. 이러한 병역 기피 논란에 대해 이완구 후보는 해명하기를, 71년도에는 X 선 장비가 없는 홍성에서 검사를 받았으나 제대로 검증이 안 되었고, 이후에 X 선 장비가 있는 대전에서 검사를 받아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문제는 청문회장에서 이완구 후보의 해명이 병적기록표와 일치하지 않으면서 일어났다. 이완구 총리 후보는 71년에 서울 수도국군병원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다가, 75년에 홍성군에서 비정상 판정을 새로 받았던 것이다. 애초에 진단 장비가 수도 국군 병원이 홍성보다 뒤질리는 없다. 또한 더 큰 문제는 이완구 총리 후보는 75년에 홍성에서 5급 사무관을 지내고 있었는데, 이 직위는 홍성의 부군수 직위다. 즉,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이완구 총리 후보는 이에 대해 해명하기를

  (1) 중학생 때 찍은 사진이 있는데 거기도 부주상골이라는 질환의 발병을 알 수 있음.

  (2) 75년에 찍은 사진은 어쨌든간 비정상

  (3) 지금도 해당 질병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고 있음. 질병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문제가 되었던 것은

  (1) 71년도에 정상이 나온 이유 자체에 대한 해명은 전혀 없음

  (2) 어쨌든 병역 이행 과정에서 거짓말이 있었던 셈인데 거기 대한 해명도 전혀 없음

  (3) 이완구 총리 후보의 주장에 따르면 홍성군은 제대로 된 진단 장비조차도 없는 곳인데 후보는 정작 그 곳에      서 보충역 판정을 받음.

  (4) 면제를 받은 이후 경제 교육원에서 근무하다가 치안 본부로 자원함. 문제는 당시 치안 본부의 채용기준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음. '운동신경이 발달하고 각종 질환의 후유증으로 신경 및 신체의 기능장애가 없어야 한   다'


그 과정에서 아래와 같은 기사가 나오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기사 링크


그 외 청문회에서 제기되었던 의문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1) 총리 후보는 부주상골로 인해 편평족이 왔다고 주장하는데 의학 교과서에 따르면 부주상골은 편평족의 직     접적인 원인이 아님(진성준 의원 주장)


5. 부동산 투기 의혹


부동산 투기는 이에 대한 소식 자체는 아마 이완구 후보를 둘러싼 의혹 중 가장 강렬한 것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생각에는 이것 보다는 위의 것들이 훨씬 더 큰 문제요, 더 명백히 드러난 문제라고 생각되어 순서를 부득불 이렇게 정하였다.


이에 대한 의혹 제기는 아래와 같은 기사들이 뜨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기사 링크


기사가 나온 순서 말고 사건 시간순으로 배열하면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1) 총리 후보의 장인이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에 1-37 필지 매입. 총리 후보의 장모가 1-71 필지 매입

  (2) 두 사람의 토지가 모두 총리 후보의 부인에게 증여됨

  (3) 총리 후보의 부인은 토지를 차남에게 증여. 차남은 현재 증여세 5억원 납부 중


기사에 따르면, 해당 토지의 가격은 공시 지가 기준으로, 2001년에는 총액 2억 6412 만원이나 차남에게 증여된 시점인 2011년에는 총액 18억 307만원이다. 총리 후보는 이에 대해 주장하기를, 당시 실 거래가는 두 토지를 합쳐서 7억 5600만원이므로 2011년의 공시지가 18억원에 비교하면 그렇게 큰 투기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실거래가로 치면, 해당 토지의 실거래가는 현재 30~40억 사이로 추정할 수 있다. 즉, 실거래가만으로 따졌을 때 5~6 배 정도 상승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도 의혹이 또다시 제기되었다. 


기사 링크


당시 이완구 총리 후보의 장인과 장모가 샀던 토지는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기 전의 토지였다. 그러나 여기에 판교 신도시 개발 계획이 확정되고 택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땅값이 폭등하게 된다. 이 때 판교 신도시 개발 계획을 수립한 사람은 당시 자민련 소속이던 김윤기 장관인데, 이완구 총리 후보는 당시 자민련 원내 총무를 맡고 있었다. 즉, 내부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을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야기의 흐름은 이렇게 된다.


  (1) 김윤기 장관, 판교 신도시 개발 계획 수립

  (2) 같은 자민련 소속인 이완구 원내대표에게 개발 정보 누출

  (3) 이완구 후보의 장인과 장모가 땅 구입

  (4) 총리 후보의 아내에게 증여

  (5) 차남에게 증여


만약 의혹 제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이완구 후보는 권력을 이용한 부동산 투기를 한 셈이 되는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아래와 같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기사 링크


즉, 장모가 땅을 사기 이전에 총리 후보와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으며, 충청 향우회 회장을 맏은 강모씨가 이 토지를 샀다가 총리 후보의 장모에게 매각하였다는 것이다. 총리 후보는 토지의 매입 과정에 대해서는 본인은 전혀 모른다고 주장했으나, 장인과 강모씨가 토지를 매입한 날짜가 같은데 과연 총리 후보가 아무것도 몰랐겠는가 하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6. 우송대 특강 의혹


이 의혹은 총리 후보가 우송대에서 특강을 한 대가로 받은 보수가 논란이 되었다. 우송대학교에서 6시간의 특강을 하고 6천만원을 지급받은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총리 후보는 이에 대해 아래와 같이 해명하였다.


 (1) 특강이 여섯 차례가 아니라 직원들 대상으로 한 특강이 따로 네 차례가 더 있었다.

 (2) 국제 교류, 해외 교류 및 교수 초빙과 관련하여 자문 역할을 11회를 하였다. 강의 뿐만이 아니라 학생 관리의  업무도 맡은 적 있다.


이에 대해 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 내역은 아래와 같다.


 (1) 특강이 여섯 차례라 했는데 대학에서 제출한 특강 시간에 정작 총리 후보는 다른 곳에서 다른 일정에 참여하  고 있었던 적이 있음. 즉, 특강 횟수는 위보다 더 적었을 수도 있다는 뜻

 (2) 그래도 석좌교수 명목으로 채용되었는데 연구 실적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없다.



청문회, 그 이후......


인사 청문회 속기록이 내용이 많고 말싸움이 벌어지는 과정이 매우 혼잡하여 여기에 다 싣지는 않는다. 읽어보라. 여당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인사청문회가 얼마나 한심해 질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실려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기사 링크


기사 링크


보고서 채택이 힘들 것 같으니까 새정치 민주연합과 협의하는 척 해놓고 뒤통수 치고 단독 통과시킨 것이다. 문제는 이 절차만 넘으면 새누리당 의원 수가 과반이라, 이탈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국회 본 회의를 열고 단독으로 안건을 상정하여 통과시키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정치 민주연합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고, 문재인 대표는 결과에 승복할 용의가 있으니 여론조사를 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기사 링크


너무나 당연하게도, 유리한 입장의 여당이 이런 제안을 받아줄 리 없었고, 결국 새정치 민주연합은 표결에 참석하여 반대표를 행사하기로 한다. 여당에서 일부 반란표가 나온 상태로, 이완구 총리 후보는 인준을 받아 이완구 총리가 된다.


기사 링크


이완구 총리는 유능한가? 글쎄,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확실한 한 가지는, 이완구 총리는 부도덕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완구 총리가 성공할지, 실패할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은 없다. 이후에 평가할 수 있으리라. 다만 내가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완구는 총리로서는 부적합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일단 인사 청문회 보고서 채택부터가 날치기가 아닌가. 더더욱 씁쓸한 것이 있다면, 이제 박근혜 정부 임기 3년차라, 3년차만 되었는데도 이런 인사들이 쏟아져 나오니, 남은 3년 동안 대체 얼마나 많은 황당한 인사들을 봐야한다는 것인가?


그 점이 가장 마음 쓰이는 부분이라 하겠다. 언젠가 미래에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날이 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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