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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신이냐?

돋보기/경제

by 열정과 함께 2012. 11. 25.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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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순전히 한 가지 덕분에 쓰게 되었다.

 

바로 인터넷에서 박정희만 그렇게 무슨 한국을 구원한 신이라도 된 양 떠받드는 꼴이 아니꼽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분명히 머리 속에 이녀석은 좌빨이 어쩌고 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 그냥 순수하게 수치로만 글을 이끌어 나가도록 하겠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의 논란은 그게 두 가지로 갈린다고 보면 된다. 하나는 사악한 독재자 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대한민국의 경제를 여기까지 끌어올린 지도자라는 것이다.

 

물론 박정희가 아예 공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집권기 동안, 분명 대한민국은 고속으로 성장하였다. 그것도 세계 역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부작용들이 일어나긴 했지만, 그러한 부작용들이 경제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심각한 부작용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대한민국이 이뤄낸 경제적 성과는 눈이 부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러한 것을 쓰는 요지는, 마냥 박정희가 이뤄낸 것이 하나도 없는 그저 황음무도하기 짝이 없는 독재자 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 만이 당시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위대한 영도자 마냥 숭배되는 것을 크게 경계하기 위해서이다. 탐구 방식은 간단하다. 우리가 그러한 발전을 달성하는 동안, 우리 이웃은 뭘 하고 있었는가? 를 보자는 것이다. 옛날이라 박정희의 이른바 '집권 기간' 인 61년~79년의 모든 데이터가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세계 경제는 중동의 위기로 말미암은 오일 쇼크 정도만 제외한다면 그래도 비교적 일정한 흐름으로(아주, 특히 최근에 비교한다면) 움직였기 때문이다.

 

글의 대체적인 흐름은 다음과 같다. 먼저, 우리나라가 어떤 것을 이뤄냈는지를 볼 것이고, 그 후, 우리 주변 나라들이 어떤 것을 이뤄냈는지 볼 것이다. 글이 이런 식으로 구성된 이유는, 6.25 이후 냉전 기간에서 동아시아 권역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경제 성장을 이뤄낸 구역 이기 때문이다.

 

일단, 그 기간 동안 우리나라가 이뤄낸 경제 성장에 대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1960년~ 1980년 사이의 대한민국 GDP 이다. 대충 산수 때려서 거의 2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자료들과 비교해 본다면, 하나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고 본다. 이제 그 다른 자료를 보자.

   

65년~80 년 간의 종합 물가지수


70~80 년대의 M2(광의통화)

66~80년 간의 물가 상승률


70년~ 80 년 간의 가계 가처분 소득

 

아래 연속으로 늘어놓은 세 개의 지표를 맨 위의 GDP 그래프와 연도를 비교해 가면서 보도록 하자. 일단 GDP 그래프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72년을 근방으로 해서 급격하게 그 상승각이 가팔라진다는 점이다. 물론 그 전에도 GDP 는 꾸준히 상승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치를 비교해 보자면 72년 이후의 급격한 상승폭이 훨씬 가팔라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 이전의 성장 속도로 계속 성장했다고 가정하고 선을 그어 보면, 80년대의 GDP 는 실제 수치의 1/3 수준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럼 그 아래의 그래프들에서 보도록 하자. 종합물가지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종합 물가지수의 상승폭이 조금씩 늘어난다는 점인데, 70년대 초중반에 한번 그 상승폭이 빨라지고, 70년대 후반부에 다시 상승폭이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종합물가지수 아래 M2 그래프를 바로 붙여 놓았는데, 쉽게 말하면 사회에 풀린 돈의 양을 재는 것이다. 그래프 모양이 상당히 비슷한데, 이는 어느 정도 당연한 것으로, 돈이 많이 풀리면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그는 자연스럽게 물가 상승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 아래는 물가상승률이다. 74년도에 폭증, 그 후 진정되었다가 70년도 후반부에 다시 폭증하는 것을 볼 수 있다(이 때 당시에 오일 쇼크가 있었는데, 그로 인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 아래 있는 가계의 가처분 소득은 일단 올려 두었는데, 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그럼 우리가 이러는 동안 다른 나라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일단 동시대에 비슷한 경제 모델, 비슷한 산업 구조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았던 대만을 보도록 하자.


61년~80년 의 대만의 GNP 이다. GDP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값이지만, 여기서 보려는 것은 성장 정도, 전체적인 추세를 보려는 것이지 조그만 오차를 보려는 것이 아니므로 큰 무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61년~ 80년의 대만의 M2 이다. 70년대를 기점으로 상승률이 점점 증가하여 계속해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60년~80 년의 대만의 종합 물가지수이다. 물가상승이 두드러지는 단계가 둘이 있는데, 하나가 73년 근방의 부분이고, 다른 하나가 70년대 후반~80년대를 포함한 이후 부분이다. 상승률이 올라가는 부분이 우리나라의 종합 물가지수가 그랬던 부분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4년~80년의 대만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다.

 

다음은 싱가폴의 경제지표.

60년~80년의 싱가폴의 GDP 이다.


60~80 년의 싱가폴의 물가 상승률이다. 역시 73~74년도 근방에서 급격한 물가 상승을 겪었다. 또한 70년대 후반부에도 상당한 폭의 물가 상승을 겪었다. 하지만 이는 위의 두 나라, 한국과 대만에 비교해 본다면 상당히 깔끔한 물가 관리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다음은 일본.


60년~80 년의 일본의 GDP 이다.


70~80년의 일본의 물가 상승률이다. 74년도 근방에 급격한 물가 상승, 다시 80년도 초반 부에 물가 상승을 겪었다.

 

위에 나열한 국가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아시아에서 급격한 속도의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들이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 대만, 싱가폴 은 한때 아시아의 4마리 용(남은 한마리는 홍콩이지만 이미 중국 영토이므로 제외했다)이라고 불린 나라들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위의 나라들은 모두 비슷한 패턴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조사하고자 했던 기간(60년대~80년대)에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당시 세계의 헤게모니를 막 움켜쥔 미국의 상황을 잠깐 보도록 하자.

 

60년~80년의 미국의 GDP 이다.


60년~ 80년의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다.


70년~ 80년 미국의 금리 변동이다.

 

여기까지 긴 글을 지치지도 않고 읽은 사람들은 이쯤 되면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대충 감이 올 것이라고 본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다 똑같이 생겼다. 즉, 당시 우리의 고속성장은 단순히 우리가 특별히 잘나서 다같이 죽 쑤는데 우리 혼자 씽씽 잘 나갔다는 것이 아니요, 세계의 조류에 우리가 편승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다만, 같은 아시아권에서 그러한 조류에 편승하지 못한 나라들이 있음을 감안한다면, 조류에 올라탈 정도로 능력이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있겠다).


 두번의 큰 물가 상승은 중동 전쟁으로 인해 촉발된 오일쇼크로 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GDP 는 어떻게 설명할텐가? GDP 에는 소비된 재화의 양도 들어간다. 즉, 사람들의 소비가 큰 지장을 받지 않고 물가가 올라간다면 GDP 역시 함께 상승하게 되어 있다. 물론 물가 상승이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록 극심하다거나 할 때는 당연히! 달라지겠지만. 이제 특히 70년대 초중반, 그리고 70년대 후반~ 80년대 초에 GDP 상승각이 올라갔던 이유까지 함께 설명할 수 있다.

 

다만 그럴 얘기를 할 수는 있다. 6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는 분명 세계적인 최빈국 중의 하나였다. 나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큰 실감은 오지 않는다만, 그 시절을 사신 분들은 틀림없이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뭐냐, 우리가 누리는 생활을 봐라. 먹을 것도 없던 시절에 비하면 얼마나 나아진 삶이냐? 너희는 복을 받은 것이다. 그 발전의 시절을 이끈 대통령은 얼마나 대단한 대통령이냐? 라고……

 

 물론 나도 그 얘기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위에는 내가 올린 가계의 가처분 소득 도표가 있다. 10년 동안 거의 10배가 가깝게 증가했다. 이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다시 묻겠다.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싱가폴과 일본의 모습을 봐라. 73년에 첫번째 오일 쇼크가 닥쳐 왔을 때는 비슷하게 급격한 물가 상승을 보이고 있지만 이후 70년대 후반에 다시 위기가 닥쳐 왔을 때는 이전에 비하면 물가 상승의 수준이 상당히 낮아졌다. 대만과 한국에 비해서. 물론 싱가폴과 일본은 당시 한국과 대만에 비해서는 선진국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렇게 치면 싱가폴과 일본의 정치 체제는 한국, 대만과는 달리 '군부 독재' 가 아니었기 때문에 군부 독재는 민주정에 비해 위기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참고로 박정희가 암살된 이유는 부마 항쟁에서 시위대에 박정희가 보인 무자비한 모습(100만~ 200만쯤 죽인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때문인데, 부마항쟁이 촉발된 이유 중의 하나는 정권 말기에 급속도로 악화된 경제 사정 때문이었다. 진짜로 유능한 지도자는 이렇게 돌발 상황으로 인한 경제 변동에도 대응할 수 있는 지도자가 아니겠는가?

 

 생각해보니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상대적인 폭은 우리나라가 더 크지 않나? 그리고, 지금 모습을 봐라. 일본은 쇠락해 가고 있고, 대만은 오래 전에 우리에게 추월당했다. 이는 그 때 쌓아올린 기반이 유효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닌가?

 

 지금 일본이 쇠락해 가는 결정적인 원인은 플라자 합의 이후 촉발된 급격한 엔화 강세가 일본의 대외 수출의 가격 경쟁력을 급속하게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또한 엔화가 강세를 띠는 과정에서 빠른 속도로 외국 자금이 유입되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는데, 그가 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 버블 붕괴의 영향이 아주 크다고 하겠다. 단순히 한 일 양국의 경제 사정을 그 때 기반으로 쌓아올렸느니, 마느니 하는 형식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만의 경우는 바로 옆에 세계의 슈퍼 파워인 라이벌이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도 만약에 북한이 중국처럼 어마어마한 속도로 급성장하여 우리를 강력하게 압박하였다면 지금과 같이 성장할 수 있었겠는가?

 

 이 정도면 박정희의 경제적인 치적이 과연 그를 신격화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는가? 란 맨 처음의 질문에 대해 충분한 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박정희는 분명 공이 있는 지도자다. 그러나 수많은, 특히 그 중에서도 나이 많은 분들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 처럼 그렇게 유능했던 지도자는 아니다 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

 

 시종일관 점잖았던 글 내용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글을 마무리짓고자 한다.

 

아직까지 박근혜라고? 그 아버지의 후광 덕분에??? 꿈 좀 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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